아, 자칭타칭 시트콤 라이프이긴 하지만 정말 오늘만큼 대박인 날은
정말 드물었어요.
조금 하드코어 한 이야기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는게 좋을거에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엄마아빠동생 셋이서 친척네서 저녁먹고
오겠다고 한게 생각나서 난 그냥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 라는 생각으로 역 근처의
웬디즈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답니다.
이 웬디즈가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3분거리에 있는것이라 언제나 학생들이
바글바글 한데 제 옆 테이블에는 교복을 입은, 그러니까 제 모교가 아닌 어떤
사립학교 백인 여학생 둘이서 수다를 떨고 있었어요.
옆 사람들 대화를 훔쳐듣는 취미같은건 없지만 전에 본적 없는 교복 같은데 어디
학교 교복일까 생각하면서 주목하다 보니까 대화가 들리더이다*-_-*
절대로 심심해서 들은거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버럭.
흠흠.
자그마치 내용을 공개하자니 이 포스팅 마저 써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망설여 지지만 이왕 뽑은 칼 두부라도 썰어야죠.
여학생1: 확실해?
여학생2: 응. 바깥에다가 사정하면 괜찮아. 임신 안해.
...칠리를 떠먹던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어요.
태어나서 여태까지 남자한번 못 사귀어본 내 앞에서 저 어린것들이 무슨 망언이야.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배운 사람이라면 저게 사실이 아닌걸 알지요.
자그마치 9학년때 학교에서 바나나에 콘돔을 씌우는 다이나믹한 산 교육을
받았던 사람으로서 난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나보다도 10cm 이상 작아보이는 저 여자아이가 배가 산처럼 부풀어서
면도칼로 손목을 긋는 영상이 내 눈앞에 지나가는거에요.
그래서 난 정상적이고 예절 바른 삶을 모토로 하는 평소의 내가 상상도 못할
일을 해버렸어요.
내 식판을 들고 일어나 그 여자애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옮겨가 털썩 앉았어요.
충동이라고 말하기도 뭐한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더군요.
막 내가 뭘 하고 있는거지 싶어서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있는데,
뭔가 느긋하고 쿨- 한 언니의 이미를 풍기고자 머리도 한번 뒤로 툭 넘겨주고서
평소에는 절대 쓰지않는 하와이안 비치★의 비키니 레이디의 말투로
헤이. 하고 말을 걸었지요.
김말랑: 헤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것 같아, 너네들.
...애들이 벙쪄서 절 쳐다보더군요.
콜라가 내 얼굴 위에 뿌려진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진짜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나 은근히 쑥쓰럼을 많이 타는 편이라서 저런
대화를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런 용어들이 나올때마다 한 톤 낮아지려는 목소리를 일부러 올리고
자꾸만 말이 빨라지려는걸 늦추면서 최대한 쉽고 차근차근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김말랑: ...(중락)...그러므로 콘돔을 써야해.
다행히도 애들이 잘 경청하고 있더군요.
미션 클리어! 라고 생각하고서 후다닥 치우고 나가려고 하는데, 여학생1이
절 부르더군요.
여학생1: 리키(...아마도 남자친구의 이름)가 부모님꺼 가져온 적도 있고
토크샵(청소년 성교육및 상담을 해주는 기관인데 언제나 프론트데스크에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잔뜩 구비해 두고 있어요)에 있는것도 아는데 내가 사기는
좀 그렇잖아요.
오, 마이.
어서 집에 가서 발닦고 잠이나 자고 싶었지만 지금 한 소녀가 미혼모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방관할 수가 없어서 도록 털푸덕 앉았습니다.
김말랑: 여기 아래 있는 마켓에서도 무인계산소 있고 그러잖아.
여학생1: 그래도...
김말랑: 날 따라와.
그 웬디즈가 있는 건물 아래는 로블러스라는 대형마켓이 있어요.
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두 애들을 데리고 로블러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호언장담을 하고서 들어갔는데, 참 막막하더군요.
말했다시피 모교 근처라서 후배들이나 친구들도 자주 들락거리는 곳이고 엄마아빠도
자주 장 보러 오는곳란 말이에요 ㅠㅠ
누구라도 만날까봐 사방팔방을 둘려보고 싶은걸 꾹 누르고서 애들을 이끌고
진입하였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그렇게 설교를 해놓고 내가 못 찾고서 헤메는건 말도 안되니까 느긋한 척,
오- 이건 로레얄에서 새로나온 헤어 에센스인건가? 라며 시간을 벌면서 가재눈으로
찾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포장이 되어서 나오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거에요.
점점 절박해지기 시작할때쯤 매장 구석에서 묘한 박스를 발견.
어둠의 아이템이 아니니까 음침하게 포장 해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발랄하게 되어있으면 처음 찾는 사람은 어떻게 찾으라는거야? 엉?!
그 아이템을 손에 쥐고서 (달리고 싶은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두고서) 최대한
느긋하게 아이들에게, 이거란다. 12개입이라고 써있네. 라고 발랄하게 말하면서
계산대로 향했어요. 무인계산대에서 살까 생각을 했었지만 난 지금 이 아이들에게
이런것을 사는것은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다! 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캐쉬어 앞에 서서 기다렸어요.
아, 세상에 그렇게 줄이 줄어들지 않고 굼벵이처럼 계산하는 계산원은 처음 봤어요.
왜 매장 사람들이 지나갈때 나만 쳐다보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까요 ^_T
남들은 빵이니 계란이니 쿠키니 이런걸 계산대에 잔뜩 올려놓는데, 나는 이글거리는
해와 야자나무가 그려져 있는 요상한 콘돔박스 하나를 올려놓고서 딴청을 하는것에
질려갈때쯤 무사히 계산을 마치고 나로부터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던
소녀들에게 박스를 열어서 6개씩 나눠줬습니다.
김말랑: 잘 봤지? 이렇게 하는거야.
그리고서 난 손을 흔들며 그 애들로부터 멀어졌어요.
마트로 들어와서 계산을 하고 나갈때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겠지만
10년은 늙어버린것 같은 심정이었어요.
그렇지만 아무렴 어때요.
이로서 난 이 세상에 원치 않았던 아이 12명이 태어나는걸 막았는걸요.
이 녀석들이 파인애플과 망고 향이 나는 콘돔을 사용하는 동안 저는 방구석에서
게임이나 하렵니다.
이건 웬디즈에서 애들하고 이야기를 할때 하도 인상에 남은 파트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여학생1의 남자친구인 리키에게 고하고 싶은게 있지만 아마 평생
실제로 만나볼 리가 없기때문에 여기에 짧게나마 써두려고 해요.
리키에게.
아마 이 게이 패션 디자이너 같은 이름은 네 본명이라기보다 애칭이겠지.
아무튼 이 추운 날씨에 연애질 하느라고 수고 많다.
20세 평생을 솔로로 지낸 이 누나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넌 아마
콧웃음을 치겠지만, 살다보면 이것저것 지킬것이 있지 않겠니.
듣고보니 넌 아마 18살쯤 된것 같고 네 여자친구는 이제 14살이던데
넌 도대체 아직도 볼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를 데리고 도대체 뭘 하는거니.
니가 만약 성인이었다면 누님이 아마 두 눈 뜨고 그냥 못 넘어갔을 수도
있는데 너도 아직 청소년이니 그냥 봐주마.
대신 피임 하나는 잘 해줬으면 좋겠구나.
이 누나가 우연찮게 네 여자친구로부터 부모님 콘돔을 훔쳐쓴다는 소식을
듣고서 안타까워서 오늘 몇개 사줬다. 네 여자친구 편에 전달했으니 잘 써라.
나도 5년전인가 성교육 시간에 구경한거 말고는 상종할 일이 없던 물건이라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트로피칼 향과 맛이 난다는 걸로 사서 보냈다.
무취무향인것보다 1달러 더 비싸더라. 부디 비싼 값 하길 바란다.
그리고 듣자하니 넌 차고와 지하세탁실에서 하는걸 좋아한다더라.
매우 추웠다고 하더라. 왜 좋은데 다 냅두고 그런데서 하니.
네 취향도 취향이지만 여자친구 건강도 생각해줘야 하지 않겠니.
왠만하면 자제하거라.
누나는 솔직히 아직 너네들이 경제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피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길 수 있는 일에 대처할만한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막아봤자 막아지겠니. 그저 조심하라고밖에 할 수가 없구나.
마지막으로,
콘돔 값은 네가 나중에 가정이 생기고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때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를 인류에게 이바지 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는것으로 갚도록 하여라.
-쿨하고 멋진 누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