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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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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16일
아마 저와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라면 '예쁜이' 라는 키워드를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거에요 :D 같은 고등학교 다니던 선배였는데 정말 우와 소리 나올만큼 예뻤거든요. 이목구비도 조목조목하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엄청났는데 제가 살면서 그렇게 청순함의 액기스를 뿜어내는 사람은 난생 처음 봤다 싶을정도 였으니까요. ..근데 남자였어요. TV에서도 그 전까지 드라마를 장악했던 조각미남들이 사라지고 방실방실 웃을 때마다 눈이 반달로 굽어지는 그런 야리야리한 일명 꽃미남들이 판을 쳤고, 신문기사에서까지 남자들도 제모와 성형수술에 관심을 크게 가진다고 할 만큼 한창 막 '미소년' 이라던지 '예쁜남자' 키워드가 나름대로의 대세였을 때였어요. 그래서 여자보다도 더 예쁜 남자가 버젓히 학교 내에 있다는게 너무 굉장하게 여겨져서 저와 제 주변 친구들은 거의 광신도(...) 수준으로 버닝했던 그런 훈훈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니 상당히 쑥쓰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보통 예쁘장한 남자라고 해도 어느정도의 남성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게 보통인데 저 선배는 그런게 1mg 도 없었어요.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정말로 누가 봐도 '저건 천상 게이다' 라고 말이 나올 정도까지였으니 말 다했죠. 앉을때 다소곳하게 다리를 모으고 앉는다던지, 머리카락을 차분하게 귀 뒤로 넘긴 다던지, 종이 하나 삐져나오지 않은 바인더를 품에 폭 안고 종종종 걸어다닌다던지. 아무튼, 같이 음악하는 학생이기도 했고 같이 수업도 일년 내내 받고 그랬어서 걔네 집에도 놀러(...라기보다 명목은 숙제)가고 여기저기 음악회라던지 같이 다니면서 꽤나 편한 친구가 됬었는데 결코 흐트러짐 없고 - 아니, 우동을 먹어도 국물 한방울 안 튀긴다니까요 ㅠㅠ 막 흘리면서 먹는 제가 다 민망했어요 - 어떨때는 거의 고결 하게까지 보여서 동경 했었지요. 아무튼, 선배가 먼저 졸업하고 2년후 저도 같은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긴 했었지만 아무래도 공부하는 것도 다르고 캠퍼스도 워낙 넓다보니까 거의 마주치지 못하고 1년에 한번정도 우연히 보면 많이 본건가 하고 지내던 나날이었어요. 단순히 루머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뛰어난 소문이 하나 들려왔는데, 선배가 근처의 콘서트 홀에서 알바를 하는 이유가 자그마치 성전환 수술을 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 하기 위해서 라는것. 저 전혀 충격먹지 않았었어요. 저 사람이 여자가 되지 않으면 누가 되리 라는 마음이었거든요. 가끔 친구들하고 얘기하다가 선배의 이야기가 올라오면, 지금쯤 수술 했을까? 하고 함께 궁금해 하는 그런 정도랄까요(...) 아니 물어보기도 뭐하고. 게다가 졸업하고서 제가 먼저 전화번호를 잃어버렸어서 두어번 선배한테서 안부전화 온 것 말고는 서로 연락 안하고 지냈거든요. 뭐 다 그런거잖아요. ...그런데, 어제 길가다가 후배 하나를 만났어요. 막 반갑게 언니언니 하길래 귀여워 죽는줄 알았 시빈다 ㅠㅠ 어우 보송보송한것들. 갑자기 그 선배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언니, 나 예쁜이 봤어. 아직 성전환 수술 안했나봐.' 라고 운을 떼길래 돈도 많이 들고 아무래도 절차가 복잡하잖아.. 라고 웃어 넘기는데 그 다음이 타격타였어요. '근데 치마 입고 있더라. 미니스커트. 그것도 고딕 풍으로 말이야, 시커멓게.' ...고딕? 그러니까 이런거? ![]() 충격과 공포다........ 난 믿었다고요. 실크 블라우스에 쉬폰 스커트를 입고 발레리나 플렛으로 사뿐사뿐 걸으며 3배쯤 더 진해진 그 청순 액기스를 줄줄 흘리고 다닐거라고. 저것도 나쁘지 않고 오히려 나름대로 멋지지만 내가 기대한게 아니었어 ㅇ<-< 충격으로 뭔가 비틀거리는 제 뒤에서는 후배가'가슴이 아주 없던데 아직 호르몬 주사는 안 맞은걸까? 수술 안한거겠지?' 하면서 종알종알 하길래 그건 벗겨보기 전엔 모르는거지 라고 진지하게 한마디 하고 터덜터덜 집에 왔어요.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해야할까..하고 곰곰하게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눈치 못 챘다는 듯이- 고딕풍의 치마를 입고 시커먼 스모키 화장을 하고 있더라도 - 대수롭지 않게 안부를 물어야 할까 아니면 조금 쇼크라는걸 표현하는게 오히려 덜 어색할까. 너 손목 정말 가늘다 라던지 머리가 많이 길었네 라면서 칭찬해주실때가 있었어요. 물론 선배의 손목이 더 가늘고 머리결도 더 좋다는건 전 우주가 아는 사실이죠(...) 그때, 게이일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설마 성전환까지 생각하고 있을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당시인데도 그 말투에 아주 연하게 부러움이, 그리고 그보다 더 연하게 질투가 묻어있는것 처럼 들렸어서 내심 제 썩은 마음을 탓했었는데 그게 어쩌면 아주 착각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할나위 없이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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