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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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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1월 26일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길래 조금은 얇게 입고 나갔다가 한걸음씩 뗄때마다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고통을 꾸욱 참아내며 겁난 거북이마냥 스웨터 속으로 목을 구겨넣고 걸어가던 참이었다. 녹이고 나면 또 쌓인다고 해도 방치해둘 수 없는 눈 때문에 걸핏하면 뿌려대는 공업용 소금덕에 보도블럭들은 겨울내내 희끄무레하게 얼룩져 있다.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빠숑!을 외치며 이 날씨에도 레깅스와 무리한 미니스커트를 고집하는 아가씨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녀들의 발끝에 달랑달랑 걸쳐져 있는 자그마한 고급부츠들이나 구두들을 보면 안타까운 한숨이 내쉬어진다. 소금이 타이어와 밑판까지 녹이는 탓에 필수적으로 특수코팅이 된 자동차들이 출고되는 나라의 겨울길을 야들야들 보들보들한 송아지가죽 구두들이 무슨수로 견뎌낼꼬. 집에가서 울지나 말아라.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계속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헤이. 라며 불러세운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서 본듯한 사람이 매우 반갑다는 듯한 표정으로 빙긋빙긋 웃고있다. "Remember me? It's me, Taylor's friend. We met about a week ago." 아아, 맞다. 일하는 곳 동료의 친구였다. 퇴근해서 나오는 길에 마주쳐서 가볍게 인사 나눴었지. 그래도 집 근처에서 이렇게 우연히 다시 보게 될 지는 몰랐던 거다. 특히나 저렇게 커다란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다니는 모습으로 말이다. 허리를 굽혀 비닐덮개로 단단히 덮혀있는 유모차 안을 들여다 보니 반짝이는 유리알 같은 눈 두쌍이 날 빤히 쳐다본다. 추운것도 잊고 입을 헤에 벌리고 그 말간 볼따구와 포동포동한 손가락들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쌍둥이야. 이제 7개월 됬어. 라는 부가설명이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은근한 자부심과 노곤고곤한 애정이 그가 이 아이들의 아빠라는 걸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해줬다. 조카들이라던지 옆집 아기들이라면 풍길 수 없는 피의 끈끈함. 깨끗하지만 오래 입어 조금 후줄근해진 후드티와 두터운 점퍼, 조금은 헐렁한 청바지와 하얀 아이팟 이어폰. 너무나도 평범한 그지없는 학생같은 옷차림과 분위기인 그가 사실은 아기아빠였다는게 의외였다고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 하자 큰아들은 네살인걸. 지금 걔는 엄마랑 쇼핑갔어. 라며 낄낄 웃는다. 아마 그런 소리를 들은게 한두번이 아닌 모양이다. "정말 귀여워요. 아기들 이름은 뭐에요?" 순간 그의 눈이 헬리혜성처럼 번뜩였다. 갑자기 등을 꼿꼿히 세우고 목을 가다듬듯 침을 꿀떡 삼키는 모습이 마치 아리아를 준비하는 테너같다. 덕분에 나도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고대하는 청중마냥 긴장하게 되는건 인지상정. "큰아들은 말이지, 루크야." 누..누가 큰아들 이름 물어봤냐. 확실히 너무 흔하지도 그렇다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앞다퉈 지어대고 있는 요상망측한 특이함도 없는 상쾌한 이름이긴 하다만. "왼쪽에 있는 있는 딸내미가 파드메." ...오, 지쟈스. 그런거였다. 네녀석 스타워즈덕후 였구나. 아까 어깨에 무게잡을때 부터 뭔가 심상찮지는 않을거라 미리 알아봤어야 했던거다. "그리고 여기 아들은..." "말 안해도 알것 같아요. 맞춰봐도 괜찮아요?" "흐음, 해봐." 키들키들 웃으며 한번 기회를 주겠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유모차의 지붕을 통통 두드린다. "오비완. 맞죠?" "찌이이잉-" 내 백만불짜리 대답은 놀라우리만치 기계음에 가까운 버저 소리에 꾹 눌려버린다. 사람 입으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둘째치고 저렇게 의기양양할 수가 없다. "내 아들 이름은.." "..아들 이름은..?" "요다야." ![]() 머리에 쿵 하고 떨어진 멧돌의 충격에 헤롱헤롱하는 날 뒤로 하고 그가 가보겠다고 인사를 하고 멀어진다. 저 반쯤 공중에 떠있는 유쾌한 발걸음으로 유추해보되 나같은 사람들의 반응을 100% 즐기고 있다. 이건 분명해. 그러나 진정한 충격과 반전은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다음날 직장에서 타일러를 만나자 마자 난 엉덩이에 불붙은 촉새처럼 쪼로로 달려가 저번주에 본 네 친구 말야, 나 어제 우리 동네에서 만났었는데 애기 이름이 요다라는 거 진짜야? 라고 그가 에이프론을 맬 틈도 주지않고 물어봤다. "오, 이름에 쇼크받은거야?" "안 받는게 더 이상하잖아." "걔네들 미들 네임도 들었고?" "에.. 아니." 타일러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진짜 재밌는걸 놓쳤군 이라는 표정. "뭐, 루크는 말이야, 미들네임이 스카이워커야. 루크 스카이워커 @)(*$." 라스트네임을 듣긴 들었는데 동유럽쪽의 난해하기 그지없는 타입이라 두어번 들은걸로 기억에 남을리가 만무하고 편의상 북미에서는 김씨랑 다름없는 브라운 이라고 가정하자. "파드메는..." "아미달라?" "응. 파드메 아미달라 브라운." 그리고 침묵이 찾아왔다. 퀴즈쇼에서 백만불이 걸려있는 마지막 질문을 맞춰야 하는 참가자의 고뇌가 날 감싸기 시작했다. 내가 스타워즈 시리즈에 조예가 없는건 지나가는 바퀴벌레도 잘 알다만 그래도 모르는건 모르는거다. 요다의 라스트 네임이 뭐였지? 있기는 한건가. "..그럼 요다는?" 차분하게 내 고뇌의 순간을 지켜보던 타일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는 고대의 비밀을 내뱉는 추장의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다이마스터. 요다 제다이마스터 브라운." ![]() 애 이름 가지고 장난치면 못써! 비틀즈가 너무 좋아서 자기가 발견한 소행성들에게 멤버들의 이름을 붙혀준 천문학자도 존재하고 자그마치 이름이 밧드와 데렐라인 남매도 (물론 성은 신씨.) 버젓하게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지만 이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으리. 남의 가족계획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건 예의에 어긋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셋이면 충분하니 조금 이른 정관수술을 추천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삐죽 솟아오른다. 가끔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내 예감이, 후에 태어날 아이들 이름에는 자그마치 숫자들이 들어갈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C3P0 골드로봇 브라운 이라던지 R2D2 스마트헤드 브라운 이라던지. 덕후의 세계는 깊고도 미묘함을 다시한번 깨닳게 해준 그에게 삼삼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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