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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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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06일
여기서 함께 타향살이를 하고있는 또래 대부분이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를 한국에서 다니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릴적의 아련한 추억들이야 말로 곧잘 오르는 토픽이기 마련이다. 아무리 다른 도시에서 자랐다고 하더라도 유행하던 노래(우리 동네에서만 부르는줄 알았던, 지금 생각해보면 은근히 저질스러운 가사의 - 니 ** 왕 ** 태평양 고래 ** .. - 노래라던지), 방과후에 하던 일들(미니카경주, 컵떡볶이사먹기), 그리고 문방구 에서 유행하던 것들(닥터슬럼프 미니만화책, 사오정시리즈, 핑클스티커)은 거기서 거기라 잘 모르던 사이의 사람들도 어릴적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놓다보면 한마음이 되어 서로 맞장구치기 바빠지는 것이다. 얼마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 알다시피 운동 되게 못하잖아. 라며 말을 꺼낸 그 언니는 유난히 달음박질에 재주가 없었던 자신이 얼마나 얼음땡을 싫어했는지 털어놓았다. 아이들이란 천진난만하지만서도 놀때만은 타고난 맹수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누가 가장 쉬운 사냥감인지 파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몇초도 걸리지 않는다. 덕분에 매번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억누르며 다리야 날살려라 애타게 달리다가 술래의 손끝이 어깨에 닫기 직전에 '얼음!'을 외치는 그 스릴이 그녀에게는 피망버섯볶음보다도 싫었던 것이다. 또 일단 얼어버렸다면 그냥 좀 냅뒀으면 좋겠는데 동지애에 불타오르는 동무들이 목숨(!)을 불사하고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겠는가. 울며 와사비 씹어먹는 심정으로 '땡...' 을 힘없이 읇조리고 다시 달려야 하는 무한의 고통. 싫기는 오지게 싫었는지 그로부터 15년 가량 지난 지금도 그녀의 눈에서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저런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듣고나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법. 잠시 골똘이 생각해 보았다.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고 할것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매우 꺼려지는 놀이가 있었다. 조그마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할 수 있는 안전하고 도덕적인 레크리에이션이란 어느정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숫자대로 짝지어 뭉치기. 한국에서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를 뛰듯 빙글빙글 돌다가 선생님께서 "셋!" 이라던지 "다섯!" 을 외치면 불판위의 산낙지들처럼 부산스럽게 주위의 아이들과 뭉쳤고, 캐나다에서는 그 유명한 치킨댄스 음악에 맞춰 어깨죽지를 흔들다가 (땀에 쩔어있기 마련인 여름에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역시나 인스트럭터가 외치는 숫자대로 후다닥 모여야 했다. 놀이 자체는 어려울 리가 없었다. 그러나 가끔은 혼자 남겨지는 사람이 생기는건 당연지사. 단단하게 뭉쳐있는 그룹들을 곁눈질하며 뻘쭘하게 서있어야 하는 그 순간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건 변태다. 굳이 그 불행한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이 내가 아닐지라도 모두의 눈이 자기를 향하고 있음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는 그 누군가를 보게 될때의 난 이렇게 안전하다는 그 죄책감이란.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빙글빙글 퍼덕퍼덕 거리다가 언제 불리울지 모르는 숫자를 기다리는, 그리고 내가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오돌오돌 돋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놀이들을 저렇게 색안경 끼고 보았던 것은 아니다. 싫어하는게 있다면 좋아하는것도 있는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술래잡기를 좋아했다. 아마 게을러빠진 천성과 맞물리는게 있어서 그런듯 싶다. 질리지도 않고 명절때마다 모이는 사촌들과 함께 좀 부잡스럽게 헤집고 다니지 말고 얌전하게 놀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동네개천에 흘려보내며 즐기던 술래잡기. 일단 나만의 공간을 찾게되면 얼음땡처럼 뛰거나 고무줄놀이처럼 펄쩍거릴필요 없이 그냥 퍼질러 앉아 머리카락까지 꼭꼭 숨기기만 하면 된다는게 어릴적부터 엉덩이가 무거웠던 나에게 매우 어필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탁월하기까지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쪼그리고 있는 자세를 좋아하는데 당시에는 몸을 차곡차곡 접으면 약간 뻥을 보태서 농구공만하게까지 오그릴 수 있었기에 그 어느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에까지 침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술래들을 곤란하게 만들곤 했으니 말이다. 벽장속 겨울이불들 사이에서 베개들과 함께 웅크려 있거나 전축 뒤 먼지구뎅이 속에서 전기코드들에 얽혀 있는 건 약과이고 가끔은 쌀통속에 들어갔다가 아무런 의심없이 뚜껑을 연 고모들께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단강 건너시게 할 뻔하기도 한 훈훈한 기억들. 술래잡기는 거의 매번 찾다찾다 지친 사촌들이 다른 놀이를 하러 마당으로 나가거나 어서 밥먹으라는 부름에 응할때 끝이 났다. 그러나 난 고집스럽게도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찾는 사람이 없어도 숨을 죽이고 언제까지나 웅크리고 있었다. 결국 누군가가 실수로라도 찾아낼때까지 말이다. 이제는 내가 끼득끼득 거리며 음악에 맞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향해 운명의 숫자를 외치고, 아무리 잘 접어봐도 등산가방만해 어디 숨기에도 민망한 나이가 되버렸지만 아직도 난 홀로 남겨지는걸 두려워 하고 누군가가 날 찾아주길 한없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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