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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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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04일
눈을 뜨니 푸르스름한 하늘의 새벽 여섯시. 머리를 위로 틀어묶고 가족들을 깨울새라 발끝을 들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 어젯저녁 냉침해둔 아이스티에 얼음세개를 퐁당퐁당퐁당 띄워 뒷마당으로 향한다. 공기가 아직 촉촉하다. 지구 어디선가에서는 지금도 소년병사들이 약물에 쩐 환각상태로 기관총을 난사 하고 있을테고 배가 곯아 쓰러졌지만 손을 뻗을 힘조차 없어 그대로 죽어가는 아이 들도 있을텐데 왜 이렇게 이곳은 평화로운지 모르겠다. 가까이 숨어있는 작은 새가 꼬륵꼬륵 하고 기묘하게 울고있고 후덥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살랑살랑 뒷목의 잔머리를 흔드는 그런 아침. 그저 데크에 주저앉아 아이스티나 쪼로록 빨아먹으며 책을 읽고싶은 유혹이 스믈스믈 올라옴을 느끼지만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내 젓는다. 아냐, 난 싸우러 나온거잖아. 손등에 힘을 줘 정맥을 한껏 세우고 마지막 한방울까지 원샷 한 후 데크 구석에 있는 전투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진한 홍차의 카페인과 슬슬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아드레날린이 뒤엉켜 전투의욕이 고조됨을 느낀다. 잡초. 너네 오늘 다 죽었어. 겨울내내 초록 풀포기라고는 슈퍼마켓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봄이 올 기색이 보이기 시작하면 - 나를 제외한 - 가족들은 '행복하고아름다운반짝반짝 울트라파라다이스뒷마당' 을 꿈꾸며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그리고는 가드닝 센터 들이 모종을 내놓기 무섭게 종류별로 가지가지 모셔오는 것이다. 올해는 보자.... 방울토마토와 로마토마토, 오이, 상추, 부추, 깻잎, 호박, 서양호박으로 시작해서 준우의 리퀘스트가 분명한 멜론, 허니듀, 수박, 옥수수, 그리고 모종은 분명한데 무언지 알 수 없는 - 게다가 심은 장본인들도 뭔지 잊어버린 - 미스테리 식물들 몇종류가 떡하니 자리 잡은 것이다. "유기농 흙이래! 게다가 이건 유기농 비료!"를 외치며 삽을 휘둘러 심어둔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열정이 매년 딱 일주일 하고 반만 간다는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이파리들이 노랗게 말라가기 시작하는게 보이면 그때까진 뒤에서 팔짱끼고 발을 까닥까닥 하고 서있던 김말랑대원이 출동할 때가 온 것이다. 막상 모종들 자체는 아침일찍이나 해가 질 무렵 공기가 선선해지면 물을 흠뻑 주고 가끔 비료들만 뿌려주고 좀 줏대없이 빈약하게 자라나는 녀석들에게는 부목을 대 주는 정도의 수고면은 왠만해서는 무리없이 자라주는데 문제는 초대한 적도 전혀 없거니와 매우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들. 그 이름도 위대한 잡초. 5월에서 6월 중순쯤 까지는 그저 웃으며 넘어갈 만 하다. '올리비아 핫세도 눈 세개짜리 외계인 행성에 가면 추녀야. 민들레밭에 장미가 피면 그게 잡초고 질경이밭에 잔디씨가 뿌리를 내리면 그게 잡초니까 우리집 잔디밭에 타식물들이 삶의 터전을 꾸렸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핍박할 권리는 똥강아지 털끝 만큼도 없다' 라며 나름대로의 진지한 의견을 펼치면 가족들은.. ![]() 라는 싸늘한 표정을 짓지만 그래봤자 어쩔껀가. 어차피 밖에 나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애써 무시하다 보면 더 이상 인간의 양심을 가지고는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상태까지 가게 된다. 차라리 비료를 주지 않았으면 적당히 지나갈 수 있으련만 니네가 쪽쪽 빨아들이라고 준게 아닌데 게걸스럽게 흡수했는지 아주 아마존우림을 펼치고 있어 낫으로 베면서 다녀야 할 수준이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조금조금씩 자이언트급 잡초들에게만 참수형을 선사하던 차,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적수를 만나고 말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그도 나의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 함께 발 붙히고 살 수 있을 수 없어. 근데 난 여기 있어야 겠으니 니가 가라. 안 간다면 제거해주마. 처음 자랄때는 민들레 이파리같이 야들야들하게 솟아오르다가 조금 성글어지면 바로 가장자리를 따라 가시를 세우기 시작한다. 근데 이게 조금 따끔한 정도의 귀여운 수준이면 내가 이렇게까지 적대감을 가지지 않았을터인데 장미가시에 버금갈 정도의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게다가 원래 이 식물의 가시에 독성이 있는건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이 식물에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건지 찔린부분들이 간지럽고 부어오르기까지 하는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뻔뻔스럽기 그지없어 자그마치 부엌용 위생장갑 위에 수술용 라텍스장갑을 겹쳐끼고 그 위에다가 정원용 목장갑으로 무장을 해도 여전히 손에 생채기를 여기저기 내는건 물론이거니와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제일 두꺼운 청바지를 입어도 쪼그려앉아 오리걸음을 하며 잡초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보면 재주도 좋게 그 두꺼운 청기지를 뚫고서 엉덩이를 콕콕 찔러대 다큰처녀가 엉덩이를 벅벅 긁게 만드는 파렴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공공의 적. 뿌리는 또 얼마나 무섭게 질긴지 중간에서 끊어져버리면 곧 며칠안에 그 끊어진 뿌리를 토대로 새싹을 틔우기때문에 그래, 아주 끝까지 뽑아주마 하고 눈에서 불똥을 튀기며 땅을 파내려가다 보면 이건 뭐 지구 중심까지 뚫고 가야 한다. 그 굵기로 예측하건데 아마 몇만년 전쯤 불량한 길로 빠져버린 당근의 먼 친척이 분명하다. 어느새 해가 쨍쨍하게 떠서 익어가는 목덜미와 등짝이 뜨셔서 더이상 견디지 못할 때쯤 집에 들어가자 TV앞에 배 깔고 낄낄대던 준우가 제비새끼마냥 입을 짜악 벌리고는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를 열창한다. 블루베리 버터밀크 팬케이크를 노릇하게 부쳐주고 쫀쫀하게 농축한 시나몬허니시럽을 만들어 뿌려줬더니 손에서 냉큼 뺏어다가 다시 TV 앞으로 쪼로록. 얌마, 그거 밖에서 사먹으려면은 니 한달치 용돈은 다 부어야 할게다. 그러니 땡큐정도는 해줘도 괜찮지 않겠니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솟았지만 도로 안으로 꾹꾹 누른다. 그래. 내가 엄마한테 소싯적 반찬투정했던 죗값이라 치지 뭐. 4시간도 넘은 대전투를 치룬 뿌듯함을 한가득 품고 방에 돌아와 컴퓨터를 키려던 참, 어제 늦게까지 소설책을 읽으셨던지 11시도 지난 지금 방금 미적미적 일어난 엄마가 반쯤 뜬 눈으로 말하신다. "딸. 깨자 마자 또 컴퓨터야?" ![]() 엄마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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