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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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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7일
밤 11시, 나긋나긋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다말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가위를 집어들어 화장실로 저벅저벅. 거울에는 당장이라도 사또나리 라고 외칠듯한 21세기 캐나다판 처녀귀신이 있다. 미역줄기 마냥 길고 곧은 머리를 늘어뜨린채 말이다. 그녀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가위를 치켜 올린다. 가위의 퍼런 날이 순간 번뜩 하고 빛을 반사하며 하강했다. 투둑 하고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흩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영구가 되었다. '분명히 망칠걸 알면서 도대체 왜 혼자 앞머리를 자른거야?' 라고 내일아침 엄마아빠가 물어본다면 이슬을 머금은 물망초같은 나이의 종잡을 수 없는 변덕이라고 해두기로 했다. 차마 책읽을때 거추장스러워서 라고 솔직하게 대답하기엔 결과물이 너무 처참하기에. 머리카락을 꼼꼼히 주워담으며 앞으로 2주동안 거울은 물론이거니와 쇼윈도우 앞에도 결코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단단히 다짐했다. 나야 안보면 그만인데 원치 않아도 봐야할 타인들에게 조금 미안하다만 적어도 나에게 미용사로서의 소질은 초파리 비듬만큼도 없다는걸 확인사살한 값진 순간 아니었겠는가. 브라보 김말랑. 이렇게 초연할 수 있는 이유.
2007년 11월 08일
이것이 Rolled Oats 인데 통귀리를 살짝 굽거나 찐다음에 롤러로 납작하게 민것. ▶
렌즈콩 통조림을 따서 소금기를 제거하고 익기 시작한 오트밀에 단호박 퓨레와 함께 ![]()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를 들으면서무념무상하게 한숟갈 한숟갈 뜨고 있다보니 마음이 놀랄만치 차분해져요. 내가 만들었지만 참 맛있다. 라는 건방진 생각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아침을 보냅니다.
2007년 11월 03일
![]() 20년전 11월 1일 태어난 이후 그동안 무사히(과연) 무럭무럭 자라서 이렇게 산소를 낭비하고 지구를 이산화탄소로 가득 채우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누나 해피 버스데이!" 를 외치면서 침대위로 풍덩 뛰어든다는게 제 배에 드랍킥을 먹인 동생의 축하를 들으며 피 토할 것 같은 상쾌한 아침을 맞이 했어요. 으레 하는 스페셜 가족식사는 제 생일 이틀 전이었던 게다가 말이죠, 새로 산 트렌치코트를 입고(괜히 목 언저리의 깃을 살짝 세워주는파파몬 생신과 겸사겸사해서 다음날 하기로 했었고 해서 막상 당일날은 밍숭맹숭하게 보냈는데 날씨가 글쎄 매우 우중충하고 아침에는 차에 치이질 않나. 오후에는 원래 정기검진 받으러 갔다가 의사선생님에게 혼쭐이 나기까지 하고 이래저래 벨이 짤랑짤랑 울리고 꽃가루가 폴폴 휘날리는 그런 날은 아니었어요 :( 센스는 절대필수) 낙엽을 바삭바삭 밟으며 걷다보니 더할나위 없이 멜랑꼴리. 나,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도 괜찮은건가. 이렇게 웃기지도 않은 고민을 하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 괜찮지 않으면 어쩔건데 라는 무식한 결론을 내고서 다시 재기발갈. 무심코 잊고있던 핸드폰에는 분명히 여느때와는 다른 양의 문자메세지들이 착착 쌓여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미리 생일을 축하해준 이동통신 회사와 은행 그리고 비자, 고마워요. 갈아마셔도 시원찮을텐데 끊임없이 신경써주는 주위사람들과 평소에는 절대 내지 않으므로 분명히 노린게 분명한 오타가 들어있던 아빠의 메세지에 와사비 한덩이 같은 뜨거운 코 찡- 함이 절절히 퍼져나가요. 존재해도 괜찮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존재자체가 악이라고 할지라도 아주 뿌리박고 있어야지 라고 새삼 유치한 다짐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별로 돌아가는건 훗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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