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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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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02일
캐나다 데이.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육중한 엄숙함이 중후하게 풍겨나오는 단어, '건국기념일' 인데 유치할 정도로 간단명료하게 불려져서 맥이 빠질 정도에요. 그리고 그래서 그런건지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을 즐깁니다. 기껏 150년도 채 되지 않은 역사라 무거울게 없지않아? 라고 물어보신다면 고개를 끄덕일 뿐. 그렇지만 캐나다 데이가 크고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대놓고 놀자판이니까. 슬금슬금 해가 지기 시작할 쯔음 집 밖으로 나가면 온 동네가 고기냄세로 자글자글. 평소에 안 먹던것도 아니면서 집집마다 마치 오늘만을 기다려 온 마냥 뒷마당에 그릴을 펴놓고 으레 때맞춰 하는 바베큐용 고기와 소세지들을 노릇하게 구워내는 터라 애꿎은 동네 개들만 이 밤이 가기전에 고기 한점, 뼈다귀 한조각 얻어먹어 볼까 낑낑대지요. 게다가 불꽃놀이! 10시가량부터 시작해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기 시작하지요. 푸쉬시시 하며 하늘로 솟는 소리, 어렵사리 재워놨더니 폭발음에 깬 아기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꼭 어디선가 나무에 불이 붙어서 출동한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의 메들리가 조화롭게 울려퍼지는 추억의 한마당. 그것이 바로 캐나다 데이의 모습입니다. ![]() 근처 한인마트에서는 그 자비로우심이 잭이 타고 올라간 콩나물 줄기처럼 높디 높아 소세지와 LA 양념갈비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공휴일이라 다른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는데 - 특히나 체인점인 마트나 쇼핑몰들은 쉬게 해주지 않으면 조합에서 눈에 쌍심지를 키기때문에 칼같아요 - 우리의 꿋꿋한 한인마트는 철저히 일년 365일 배고픈 우리와 함께 합니다, 아멘. ![]() 갈비는 진리고 생명이지만, 전 양념갈비는 싫어요. 절대적으로 생갈비. 요즘은 워낙 모두들 어디서나 사진기를 들이미니까 괜찮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아직도 DSLR은 아무래도 위협적인지 고기굽던 청년이 움찔움찔 거리더니 매우 수줍에 볼에 홍조를 띄고는"저.. 포즈 취해야 하나요?" 라고 물어보길래 그냥 굽던 고기나 마저 구우란 의미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천막 저쪽 구석에서는 두 아저씨들께서"사장님께서 고용하신 건가요?" "아니. 난 사진사 부른 적 없는데.." 라며 속닥속닥. 고기굽는 청년님, 그리고 사장님. 사실 제 정체는 폼만 있는대로 잡아놓고 똑딱이로 찍은것보다 못한 사진만 줄창 뽑아내는 양심에 털난 워너비 헝그리 아티스트 입니다. 굽는데 집중치 못하게 한 죄를 범하게 해서 매우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고기는 훌륭했어요. ![]() 그냥 집에 가서 대자로 넙죽 뻗고싶은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두고 준우의 소원대로 근처 공원으로 붕붕. 카니발이 한창이었지만 도착해 조금 둘러보기 시작한 즉시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퍼붓기 시작해 텐트 아래로 피신했어요. 폭우 덕분에 그때까진 별로 청중이 없던 컨츄리가수의 무대 주위가 발 딛을 곳 없을 정도로 바글바글 차오르고 이내 흥이 난 아가씨들이 둥가둥가춤을 추는걸 잠시 구경하는데 준우가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리네요. 우산도 없는데 저 빗속을 어떻게 뚫고 가나 잠깐 고민하다가 에라, 살신성인이 따로있나 싶어서 그냥 무작정 나서서 부모님을 위한 맥주와 안주거리, 준우를 위한 아이스크림을 물 닿을새라 품에 꼬옥 껴안고 오대양을 맨몸으로 횡단한 새앙쥐마냥 푹 젖어서 돌아오니 거짓말처럼 딱 비가 멈추네요, 이거. ![]() ![]() 빗물에 쩐것도 서러운데 왠 바람이 숭숭 불기 시작해서 딸의 골수가 얼어가는(!) 고통도 몰라주고 컨츄리 기타소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는 부모님과 케챱이 더 필요하다며 다시 다녀오라는 괘씸한 소년 김준우를 보좌하며 '누나 너무 추우니까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10시쯤 불꽃놀이 시작할테니까 그때까지 비 또 오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자' 라고 약속하고 - 물론 매우 강력한 반발이 있었지만 - 집에 돌아와 등짝이 뜯겨나갈 것 같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그새 이녀석은 곯아 떨어져 있길래 푸훕 웃음이 나왔습니다. 미안, 불꽃놀이는 내년에 보러 가자. 캐나다 데이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올 테니까 내가 네 곁에 있는 한 매년 함께 하자꾸나. You know who 에게 보내는 전언.
2009년 06월 26일
전에 이 포스팅 에서 볼 수 있듯이, 저에게는 오늘로서 2학년을 마치고 - 성적표는 차마 두려워 아직 펼쳐보지 못했다만 -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어린 동생이 하나 있어요. 아직도 슬슬 늙어 꼬부라지기 시작한 이 누님을 따라잡으려면 머리의 피딱지부터 떼야 하겠다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하루가 다르게 다음날 뒷뜰의 잡초만큼 성큼성큼 자라나고 있어서 어쩐지 몰려오는 기특함에 보고 있자면 제 입꼬리가 살사댄스를 추곤 합니다. ![]() 소년 김준우(8). 매우 소싯적부터 걸핏하면 카메라를 들이미는 누나밑에서 태어난 죄로 줄무늬 내복 차림으로 변기에 앉아 사진이 찍힐때도 한치 부끄러움을 느낄 줄 모르는 대담함과 토실토실한 궁둥이가 매력포인트★ 입니다. ![]() 아직도 하키에 매진하고 있어요. 조금 부산스럽고 변덕이 죽끓는 면이 없잖아 있는데 하키는 의외로 우직하게 계속 좋아하고 있는걸 보면 참 신기하지요. 이 팔불출 누나가 쬐금, 아주 쬐금만 자랑을 하자면.. - 아, 아, 마이크 테스팅 원투쓰리 - 이녀석 꽤 재능이 있나봐요. 자기네 하우스 리그 팀에서 뽑혀서 엘리트 팀에 들어가길래 어쭈? 했었는데 그 엘리트들 중에서만 또 추려내서 올라갈 수 있는 트리플A 팀들에서 준우가 내후년 나이가 차게 되면 스카우트 해가겠다며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고 있고 심지어는 돈을 무더기로 벌되 호화생활에는 별 취미가 없으신 모 유명 변호사께서 준우가 하는 경기를 관람하시고서는 하키를 업으로 삼아 프로로 키울 생각이라면 사립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부 뒷받힘해주고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프로팀쪽에도 입김을 불어넣겠다고 난데없이 제안을 하는 둥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가는 안드로메다급 이야기가 오가는 그런 상황인 거에요. 이 부근에서 본격적으로 하키를 시키는 부모들이라면 준우의 애칭인 JK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고 - ..뻥이 좀 가미되었을 가능성 80% - 하키팬 포럼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린 다는게 욕창이 스믈스믈 올라오는 기미가 느껴질때만 몸을 뒤집어주는 이 게을러빠진 누나로서는 너무 신기해서 그저 실없는 웃음만 나와요. 참고로 그 포럼에서 'JK의 누나'에 대해서도 언급이 된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 인걸로 알고 있다' 라고 써져 있었어서 매우 대폭소. 경기에 따라갈때마다 뽈뽈뽈 카메라가방을 매고 돌아 다니고 코치들과 안면이 익은 탓에 가끔은 사진 찍기 좋은 코치박스석에 들어가 있어서 그런 오해가 있던 것 같은데 다행히도 저희 가족 말고는 제 결과물을 본 사람이 없어서 아직 제 실체가 뽀록난 적 없습니다(...) 맨 아래 사진들은 나이아가라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을때 인간 팬케이크를 쌓는 모습과 토론토와 그 지변주역 올스타전에 초청받아서 역시 우승했을때 찍은 기념사진으로 쪼그만게 뭘 아나 싶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뽑아달라고 조르길래 방에다가 넓적하게 붙혀줬어요. 덕택에 목욕 후 팬티만 입고 양 허리에 손을 얹은채 흐뭇하게 감상하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되었지요. 아레나 안은 워낙 어두침침한데다가 저 꼬맹이들이 날다람쥐처럼 스케이팅 하질 않나, 드디어 앵글안에 잡혔다 싶으면 자빠지고, 휙 뒤돌아 버리고, 심판이 끼어들어서 뷰를 막아버리기 일수라서 손가락에 쥐가 오르도록 셔터를 눌러대도 건지는게 드물어요. 감사하게도 친구의 애인께서 500mm 망원렌즈를 빌려주셔서 며칠 스포츠신문 기자의 느낌으로 설치고 다녔지만 제 지구 코어에 다다르는 낮은 내공은 장비빨로도 어쩔 수 없었는지 남은건 렌즈 무게에 늘어난 어깨 인대뿐..orz 워낙 어린데다가 아직 재능이고 장래고 운운할 단계가 아니라서 가족 모두 함께 즐기는 정도로 유지하고 있지만 연습을 다녀오고, 개인레슨을 받고, 주말내내 정신없이 토너먼트들을 뛰고도 집에 돌아와서 하키채를 휘두르며 뛰어다니는걸 보면 아, 정말로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무언가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 ![]() ![]() 야구도 좋아하는 탓에 일주일에 한번 경기를 치루러 가곤 하는데 정말로 '동네야구'가 무엇인지 깨닳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광경이에요. 헛스윙은 양반이오 잡는 공보다 놓치는 공이 더 많고, 한번 무난하게 치고나면 왠간해서는 홈런이 되는 콩가루 경기판을 보고있어도 나름대로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경기에 임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차마 웃을 수가 없어요. 생과 사가 걸린마냥 투지가 이글거리는걸요 ㅇ<-< 저 마지막 사진은 준우한테서 '조금만 일찍 찍었으면 내가 공을 잡는 것 처럼 보였을 텐데' 라며 핀잔을 들었어요. 니가 놓쳐놓고 왜 나한테 화풀이야, 흥칫핏. ![]() 이제 몇년만 지나면 슬슬 목소리가 굵어지고 수염도 한두가닥씩 나기 시작하겠죠.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면 반쯤 뜬 눈으로 누나의 침대 옆으로 기어 들어와서 칭얼거리지도 주말 아침마다 핫케이크와 해시브라운을 해달라고 조르지도 않을거에요. 아마 저보다 머리 한통은 높은곳에서 내려다보며 14살이나 많은 이 여자는 나와는 세대가 다르다고, 그러니까 내 감정을 공감해 줄 수도, 이해해 줄 수도 없다고 생각하며 거리를 둘지도 몰라요. 그리고 어쩌면 그게 피하기 힘든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만지면 퐁 하고 사라져버릴 것 같이 조그마했던 그 갓난아기를 처음으로 품에 안아본 그 날부터 아롯한 우유풋내가 옅어지기 시작해 제 손 없이도 넘어지지 않고 뛰어다니게 되고 어느새 입가에 밥풀을 묻히고 노란 책가방을 맨 채로 학교로 향하는 오늘날까지, 그리고 더 이상 보호자로서 누나가 필요없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해도. ![]() 기억해줘. 그리고 의심치 말아줘. 누나가 얼마나 오금이 저리도록 널 귀여워 했는지. 얼마나 내 전부를 줄 수 있을 것 처럼 널 아꼈는지. 누나는 네가 넘어지면 받혀줄 수 있도록 뒤에서 네 등을 지켜보고 있단다. 그래, 언제까지나.
2009년 06월 11일
그러니까 말이에요, 여름이 왔어요. 공기가 후덥해지고 시간이 널널하면 왠지 쓸데없는 것이 하고 싶은 법. 지리산 암반수처럼 퐁퐁 솟아나는 이 트로피컬 젊음의 에너지를 건전하고 생산적인 것으로 돌리고자 방을 뒤지던 차, 털실뭉치와 코바늘을 발굴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친절하기 그지없는 인터넷 강좌들을 눈알이 쪼개져라 쳐다봤건만, 긴건 실이요 저 막대기는 바늘이노라. ...그러니까 감고 빼고 돌려서 뭘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거야. 그냥 때려치려고 실뭉치를 집어 던지려 하기를 서너번, 그때마다 '나도 손가락 열개 있고 좌뇌 우뇌 다 있어' 라는 오기가 솟아나 뜨고 푸르며 흰 털실이 거무죽죽해지고 손가락이 얼얼해질쯤 대충 감이 잡혔어요. 좋다고 히히덕 거리며 몇줄 떠서 엄마에게 자랑하러 쿵탕쿵탕 달려가니, "뒤집어서 떴잖아." ..응, 역시 그런거였어. 아무튼 완성했어요. 자타공인 손재주라고는 2MB 양심만큼도 없는 제가 해낸거에요. ![]() 내내 비오고 날씨가 흐리다가 간만에 해가 나왔길래 빛좀 받으며 기념촬영★ 양이에요, 양. 저게 도대체 뭐냐고 자문하셨던 분들 각성하세요. ![]() 이게 조금 더 구라성 덜 짙은 사진이에요. 만들다 보니 털실과 솜 덩어리일 뿐인 이 무생물체에게 알 수 없는 애정이 솟아나지 뭡니까. 그래서 섀도우도 땡땡이 마후라도 둘러줬는데도 뭔가 2% 부족. 뭐가 좋을까 하고 방을 빙글빙글 돌며 고민하던 차에 발에 툭 채인게 있었으니 바로 허니와 클로버 1권. 책장에 도로 넣으려고 주워드는 순간 펼쳐지는 페이지에서는 하구미와 모리타가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지고 있었고 곧바로 이어지는 코로보클 촬영씬이 보이지 뭐에요. 그래, 역시 울먹거리는 눈을 가진 동물들에게는 머루잎을 위에 씌워줘야 하는 법이에요. 토토로는 예외지만. 펠트를 대충 잘라 만든 머루잎에다가 수도 놔주고 무당벌레도 어플리케 해 놓을까 하고 순간 불타올랐지만 5초후에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글루건에 맨 허벅지를 데이고서 바람빠진 풍선처럼 푸슈슈슉 의욕제로. 그럼 그렇지. 다들 잘 지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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