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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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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1월 27일
주중에는 각자 바쁘기에 같이 살더라도 모두 함께 둘러앉아 저녁 한번 먹기 힘든것이 현대인의 모습. 저희집도 예외는 아니랍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집에서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식사시간에 맞춰서 집에 돌아와봤더니 아무도 없다 라는 조금은 울적한 시나리오를 종종 겪곤 해요. 여기서 제 1타격. 지친 가족들이 돌아왔을때 여유롭게 음식 간을 보며 '많이 춥지? 어서 옷 갈아입고 손씻고 와.' 라고 말해볼까 싶어져서 언제쯤 돌아오냐고 전화해보니 "우리 저녁먹고 돌아가니까 알아서 찾아먹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을때 제 2타격. 무심한듯 시크한 21세기의 레이디는 절대 결코 네버 이런걸로 삐지지 않는다 라고 자기최면을 걸며 심퉁맞게 열어본 밥통안에서 날 반기는것은 오직 쓸쓸한 밥주걱. 이로서 제 3타격. 최후의 보루인 그분을 꺼내려 뒤돌아보니, 두둥. 어째서 라면조차 없어 이 슬픈 나에게 제 4타격을 선사하는 것인가요. 나도 돈있어! 사먹을거야! 하고 흥칫핏 거렸지만 밖의 온도는 영하 20도. 결국 아무리 봐도 신통찮은 냉장고 속의 재료들로 무언가를 창조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냉장고 정리라는 명목하에 엄마가 요즘 장을 뜸하게 봤다는건 알았지만 막상 시들한 야채 몇가지와 김치만 달랑 있다는건 정말 너무해요. 게다가 김치는 국물밖에 없어! 버섯과 고추, 마늘, 약간의 피망과 샐러드용 아기시금치로 뭘 만들어야 저 멀리서 날 잊고 하하호호 포식하고 있을 가족들에게까지 잘 만들었다고 소문이 날까 싶어 머리를 데굴데굴 굴려봤지만 영 그럴싸한 생각은 나지 않았고, 고골고골 소리를 내며 귀찮은데 생으로 다 씹어먹으라고 명하는 위장님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타일르며 후라이팬을 꺼냅니다. ![]() 그리고 이렇게 너무나도 정직한 요리가 완성. 올리브오일에 살콩살콩 마늘을 볶아서 다른 재료들을 넣고 뒤적뒤적. 정식으로 다시 국물을 내는것이 정석이련만 이미 MSG에 절여진 몸, 아무렴 어떠랴 싶어 혼다시를 탄 물에 자작하게 졸여서 소금후추로 간을 했을 뿐인데 의외로 맛이 괜찮아서 흐뭇해져요 :) 너무 간단했기 때문에 탈선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건 논외로 합시다(...) 아기시금치 침대위에 살포시 눕혀드리사 괴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니 피날레는 발사믹 비네거 한스푼으로 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뜨거운 탱고! 이것이 바로 퓨전! 이라고 말해보지만 단순히 발사믹 비네거를 너무 좋아해서일 뿐. 병나발을 불라고 해도 할 수 있어요. ![]() 그러고보니 여기있는 재료 모두 어렸을때는 이를 아득바득 갈며 싫어했던 식재료라는 것이 사뭇 재밌어졌어요. 시금치는 비려서, 마늘과 고추는 매워서, 버섯은 특유의 몽글한 식감이 너무 적나라하고 변태스러워서. '크면 다 먹게 되있어' 라고 어른들이 말하셨을때 난 관뚜껑 덮는 날까지 절대 야채를 입에 대지 않겠다고 큰소리 떵떵쳤던걸 그분들이 모두 잊으셨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정말로 멋진 어른이라면 혼자서 먹더라도 (아니, 혼자서 먹기때문에 더더욱) 촛불을 켜고 와인 한잔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할터지만 전 헛자랐기 때문에 컴퓨터 앞에서 시퍼런 모니터 빛을 벗삼아 저녁을 먹습니다. 상대가 먹는 속도에 맞출 필요도 없고 피망부터 골라먹어도 눈치 보이지 않아요. 어느쪽이냐고 하면 사실 혼자 먹는걸 더 선호하는 편. 최근 식사도 열에 아홉은 홀로. 언젠가 읽었던 심심풀이땅콩 기사에서 말하길 평생을 혼자살며 독신을 고수하는 자들의 평균수명은 기혼자들에 비해서(물론 행복한 결혼생활이라는 전제하에) 짧다고 합니다. 꼭 먹는요소만이 그리 만든건 아닐터지만 유난히 요리를 즐긴다던지 건강에 신경쓰는 경우가 아닌 이상 혼자 먹을 음식이 타인들을 위해 만든 음식보다 격이 떨어짐은 역시 피할 수 없는 법이겠지요. 이 여유가 너무 편해져 버리면 요절하겠다고 생각하며 젓가락을 퉁겨내는 버섯의 쫄깃함에 새심 감탄합니다. 다음 주말에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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